개발자의 원격 근무 2주 체험기

회사에서 재택 근무를 시작한지도 어언 1년 반이 지났습니다. 재택 근무 방식도 초기에는 주 2일 출근이었지만 지금은 완전 재택 혹은 원격 근무 형태를 취하고 있고, 개발자들 사이의 빠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 다양한 툴과 방법들을 도입하였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팀에서는 Gather Town을 살짝 맛보다가 현재는 Discord를 이용한 의사소통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의외로 메타버스에서의 움직임은 귀찮고 사람을 호출하는 일은 불편했습니다.

시작

이러한 툴을 자주 사용하며 재택 근무에 익숙해지면서 회사로 출근하는 일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 개월 동안에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물론 저와 엇갈려서 출근을 했기 때문이겠지요. 이 때문에 팀 내 조직력의 하락이 우려되나 이에 대한 고민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지금 당장은 재택 근무에서도 끝판왕에 해당하는 혜택을 누려보기 위해서 집이 아닌 곳에서의 원격 근무를 해보기로 합니다.

동료 직원의 제안으로 시작된 타지 원격 근무에 대한 제안은 곧 저를 포함하여 미혼 근무자 총 4명이 고성과 속초에 각각 6박 7일을 지내는 12박 13일의 여정으로 계획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생활 습관도 다르고, 숙소는 방 하나 혹은 둘에 거실 정도라서 걱정이 많았지만, 이런 기회가 많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신속하게 일정을 잡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바다 근처로 말이지요.

숙소에서 1분만 나오면 바로 바다가 나타납니다.

원격 근무를 떠나면서 가장 우려가 되었던 부분은 바로 개발 장비들입니다. 단순히 노트북 하나만 가지고 개발하기에는 아무래도 불편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총 4대의 모니터와 개별 키보드, 마우스, 그리고 각종 충전 도구와 공유기까지 포함해서 정말 많은 장비를 챙겼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들도 고려해야만 했지요. 이러한 사정에 의해서 짐이 많아지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캐리어 뒤에도 공간이 있습니다. 모니터도 총 4대가 숨어있습니다.

근무 환경

이렇게 들고 온 장비들로 셋팅한 근무 환경은 아무래도 사무실이나 집보다는 열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수의 멀티탭과 모니터 3대를 사용하여 편하게 근무가 가능한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식탁을 이용하여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저녁 식사 전에는 자리를 모두 치워야 하는 점이 제일 귀찮았습니다. 두 번째 숙소인 속초에서는 보다 거대한 식탁이 있어서 좀 더 여유롭게 자리를 셋팅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식탁을 잘 나눠서 근무하는 방법!

그런데, 왜 모니터가 3대일까요? 정답은 화면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모니터는 가급적 화면에 부딪히는 물체가 없도록 잘 가지고 다니시기를 권장합니다…

이게 왜…

근무 시간에는 회사와 다름없기 때문에 업무상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다만 자잘한 문제들이 여럿 발생하였습니다.

  • 다수의 사람이 한 곳에 있다 보니까 음성 / 화상 미팅에서 옆 사람이 말하는 소리가 섞이는 문제가 일부 있었습니다. 동시에 미팅이 있을 때에는 서로 잠시 노트북을 가지고 자리를 벗어나야 했습니다. 같은 회의일 경우에는 한 명만 대표로 참석하고 마이크를 공유하였습니다.
  • 생활 패턴에 따른 출근 시간의 다름에 의해서 근무 시간에 차이가 생기면 근무 시작과 끝 시간이 약간 집중이 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래서 본래 출근 시간보다 평균 한 시간 일찍 다른 사람들과 출근함으로써 분위기를 맞췄습니다.
  • 하나의 인터넷을 여러 명이 동시에 사용하다 보니까 인터넷이 느려지거나 끊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였습니다. 아무래도 화면 공유나 음성 미팅이 많은 원격 환경이기 때문이겠지요. 사전에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라서 첫 번째 숙소에서는 네트워크 트래픽을 최소화하고, 두 번째 숙소에서는 공유기를 개인 것으로 교체 사용함으로써 해결하였습니다.
  • 등받이가 없는 의자를 사용하게 되는 경우에는 오랜 시간을 앉아있기가 어려웠습니다. 잠시 바닷가 산책을 다녀와서 다시 열심히 일합니다.
  • 몸이 바닷가 근처라서 그런지, 마음도 자꾸 바닷가로 흘러갑니다. 결국 참지 못한 저는 연차를 사용하고 나가서 놀기도 했습니다.

생활 환경

근무 환경은 잘 구축되었지만 퇴근 후에도 함께하는 직원들과의 시간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식사도 하고, 씻고 잠도 자야 하겠죠. 가족과도 함께 생활하면서 매번 즐거울 수는 없는데, 처음 같이 살아보는 직원들과의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입니다.

잘 먹어야 일도 잘 하겠죠?

이러한 환경에서 제가 느낀 조심하거나 불편할 수 있는 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한여름 무더위에서는 에어컨 온도에 따른 편차가 심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더운 사람을 참으라 할 수는 없으니 추운 사람을 만들고 옷을 더 입도록 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오히려 추위에 약한 사람이(?) 더 힘들 수 있습니다.
  • 수면 시간과 기상 시간이 제각각인데, 공간은 제한되어 있어서 불가피하게 늦게 자거나 먼저 일어나는 사람에 의한 소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정상적인 숙면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귀마개와 안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 화장실이 하나밖에 없었던 첫 숙소에서는 창문마저 불투명 유리라서 모두가 조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기상 시간이 다름에 의해 씻는 시간도 달라서 혼잡하지는 않았습니다.
  • 양말이나 속옷 등을 빨래하게 되는 경우에도 경우에 따라 불편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나는 괜찮아도 상대방이 불편하면, 상대방을 존중해야 합니다.
  • 식사나 외출 등에서 개인의 취향 차이에 따른 의사 충돌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차량은 한 대이므로 동시성이 떨어집니다. 이는 서로 잘 조율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하나의 숙소에서 단체 생활을 하게 됨으로써 개인 시간보다는 단체 시간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 시간이 아예 없어지면 서로 불편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단기 숙박이면 상관 없지만 장기 숙박에서는 주기적으로 빨래와 청소를, 그리고 매일 설거지를 해야 합니다. 서로가 불편하지 않도록 공평하게 혹은 나서서 하면 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당연하거나 조금만 조심하면 될 일들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극복하면 아주 훌륭한 생활 환경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첫 번째 숙소의 한적한 바닷가.
바닷가에서 시원한 맥주 한 잔.
밤에도 즐거운 바닷가.
두 번째 숙소 앞 호수에서 바라본 설악산.
나쁘지 않은 속세의 카페.
시원한 호수 바람을 맞으며 산책.

약 2주간 원격 근무를 하면서 다양한 문제들을 겪었지만, 근무 경험 자체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모두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업무가 아무리 많아도, 연차가 부족해도 큰 부담 없이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면서 몸과 마음을 릴렉스하고 올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성수기에 방문해서 제 지갑은 평소보다 빨리 얇아지기는 했네요.

집에 돌아온 지 이제 겨우 하루가 지났는데 귀찮고 피곤한 감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격 근무의 훌륭한 기억 덕분에 저는 또 다시 떠날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다음에는 비수기의 한적한 곳에서 오랜 기간 근무해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자취 하시는 분들이라면 사는 위치만 달라질 뿐, 생활 자체는 동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회가 되시는 모든 분들이 꼭 원격 근무를 경험해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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